[독일석사일상 D+358] 행운과 불운...
2020.09.24
행운과 불운
오늘은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날이 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길에 달팽이를 보았다. 어제 저녁에 비가 왔는데 촉촉한 흙바닭에 달팽이들이 나와 있었다. 진짜 다섯 걸음마다 한 마리씩 있어서 최소 다섯 마리는 넘게 본 것 같다.
이때만 해도 예쁜 하루가 펼쳐질 줄만 알았다.
불운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험 수업 중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실험 과정중에 쉽게 말하면 젤리를 특정 용액으로 몇번 씻어내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젤리를 담고, 그 안에 용액을 채우고 몇분간 흔들어준 뒤, 담겨있던 용액을 버리고 새 용액으로 채워주고 하는 과정을 3번 정도 반복하는 일이었다. 용액은 각자 쓸 만큼 주어지지 않았고, 공용 테이블에 놓여있어 그 곳에서 교체해오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세 번째 용액을 교체하려고 가는 길에 한 친구가, "그 용액 버리지 말고 나 줘" 라고 하기에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재사용하려나보다 하고 그 친구 용기에 부어주었다. 그런데 공용 테이블에 가 보니 그 용액이 바닥난 것이다.
그걸 보고 내가 "뭐야! 이거 다 썼어? 나도 이거 필요해." 라고 하니 뒤에서 용액 가져간 친구, 그 애랑 같은 조인 다른 친구가 웃었다. 정말 기분이 나빴다. 젤리는 용액 없이 마르게 두면 안되고, 그 용액에 담가 내일 아침까지 밤새 보관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가 있지? 왜? 심지어는 친했던 애들이라 충격이 더 컸다.
진짜 왜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기 생각만 할 수 있는지. 자기만 잘 되면 다인가... 하...참
아니 용액이 없으면 알려줘야 정상 아님??? 필요하면, 필요한데 조금만 나눠줘 라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냐고...
그러고는 랩로테이션을 하러 다른 랩에 갔는데, 엄청 바보 같은 실수들을 했다ㅠㅠㅠ 말도 잘 못알아먹고ㅠㅠㅠ
너무 창피스럽고 자괴감 들었다 진짜ㅠㅠㅠ
날 얼마나 멍청이로 생각했을거야ㅠ
낮에 롤라가 실험실에서 내 카톡 가지고 놀면서 "내 뇌는 고장났어" 라는 문장을 독일어로 적었는데, 진짜 복선이었나보다.
그리고, 롤라가 오늘 엄청 감동적인 말을 했다. 내일 저녁에 애들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나는 사실 단톡에 대답을 하지않았다.
가기 싫었기 때문...ㅋㅋㅋㅋㅋㅋ 그렇게 10명정도 모이는 자리를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그리고 헬렌과 그런 사적인 자리에 가면 왠지 더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저녁도 무겁게 먹고 싶지 않고. 암튼 그래서 그냥 단톡에 딱히 간다는 말도 안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롤라가 "너 올거지?"라고 묻기에 나는 "음.... 실험 일찍 끝나면 갈게"라고 했다. 변명이었다. 저녁 약속은 8시 였기때문ㅋㅋㅋㅋ 8시까지 실험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러자 엄청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실험 그 전에 당연히 끝나잖아. 제발 같이 가자. 너 없으면 재미없어ㅠㅠ"
이미 감동..
사실 난 이미 지나번 베트남 레스토랑 단체식사때 이미 빠진 적이 있다.
"지난 번에 베트남 음식점에 갔을 때도, 너 없어서 별로였어. 네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너무 달라. 너랑 있는 게 너무 익숙해졌나봐"
내가 넘 감동이랬더니 롤라는 이게?! 하는 느낌으로 "그치만 사실인걸"이라고 해줬다ㅠㅜ 모야모야ㅠㅜ 나의 loveless 인생에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행운은 이모가 보내주신 택배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이다. 작은 박스 일줄 알았는데 엄청 큰 상자에 이거저거 잔뜩 싸 주셨다. 귀여운 사촌동생 그림과 편지까지...! 삶의 의욕이 든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