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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새의 일상/독일 석사 일상 (2019.10.01~2021.9.30)

[독일석사일상] 막스플랑크에서 밥 훔쳐먹고 올뻔한 썰, 혼자서 한 걸음 아주 칭찬해!

by yeoneobird 2020.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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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막스플랑크에서 밥 훔쳐먹고 올뻔한 썰

우리 캠퍼스 가까이에는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있는데, 오늘 그곳에서 Pre-doc파티가 열렸다!

참고로, Pre-doc파티는 PhD학생 지원자들을 위한 파티로, 입시(?)에 지쳐 있을 지원자들을 위한 파티다. 

이 일대 연구소들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많이 오는 파티여서 너무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PI들이나 포닥들도 많이 만나고, 혹시나 연구실 잡을 얻을 수 있을까해서, 어떤 연구진들이 있는지, 내가 관심있는 랩 PI 이름은 뭔지 이런것들도 미리 조사했눈뎁...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이 10분전에 취소해 버렸다... 칭구들아ㅠㅠㅠ

그러고 진짜 거의 모든 학과친구들한테 다아아 연락을 했는데, 다들 시험때문에, 약속있어서 안된다고 그랬다ㅠ

파티에 혼자 가기는 싫운데ㅜㅠ 고민고민하고 있었는데, 제로언니와 앙언니가 용기를 주었다.

"일단 가고, 너무 뻘쭘하면 그냥 나와! 아무도 신경 안쓸거야! 밥만 먹고 와도 반은 성공한거야."

그래 가기라도 해보자! 하구 길을 나섰는데,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운거 있지ㅠㅜㅠ 

"그래 못할게 뭐야, 한국에서는 이런데 다 혼자 다녔잖아! 누가 같이 안가준다고 안갔니? 뭐가달라! 나라고 왜 못해!"

역시나 다들 삼삼오오 모여있는데, 나만 혼자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는 심정으로 뷔페 쪽으로 가서 음식을 막 주워담았다. 사실 배가 안고팠는데 할 게 없어서.. 

그런데, 음식을 담다가 느낌이 쎄해서 옆사람에게 돈내야 되는거냐고 물었는데, 그냥 방문자면 2유로를 내야한단다.

뷔페 끝에 사람이 앉아서 지키고 있었는데, 여기서 돈내야 하냐고 물어보니, 코인이 있으면 여기서 낼 수 있고, 아니면, 로비가서 쿠폰을 사야한단다. 나는 아까 뽑은 50유로짜리 지폐밖에 없었기에, 음식을 그 자리에 두고, 로비로 나갔다.

 

그런데.....

지갑이 없다? 지갑을 안가지고 왔어ㅠㅠ 코트 바꿔 입었는데 지갑을 안 빼온거 있지??!!! 바보야ㅠㅜ

다시 뷔페 캐셔한테가서 "나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카드밖에 없는데.."

그 직원이 매우 당황하며, "음...어떡하지.. 이름이 뭐야?? 너 여기 아는 사람 없니?"

나는 시니어 아이유시(인도)가 온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응, 이따가 친구올거 같긴한데..." 라고 말했다.

나 아이유시랑 안친하다ㅠㅠ 진짜 그냥 시니어...

"그럼 이따 친구 오면 내." 그러구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ㅠㅠ 나 2유로도 없는 거지는 아니야.....근데 얘도 많이 당황했는지, 이름 물어보고 적지도 않고ㅋㅋㅋㅋ

 

그렇게 혼자 쭈구리처럼 밥먹고 있었는데, 쩌 멀리 아이유시가 다른 사람들이랑 밥먹고 있는게 보였다. 어찌나 반갑던지ㅠㅠㅠ 안친한데.. 고민고민하다가 접시들고 다가갔다.

"아이유시! 나 여기 앉아도 돼?"

근데 진짜 반갑게 맞아주는 아이유시ㅠㅜㅠㅜ 진짜 착한거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착하다니ㅠㅜ!

야생의 피카츄 아이유시

그렇게 밥먹고 일어나는데, 내가 용기내서 말했다. 

"아이유시, 나 니 도움이 필요해"

"말 해, 뭔데?"

"내가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2유로를 못냈어..."

그랬더니 아이유시가 웃으면서, 귀엽다면서 내가 민망하지 않게 해줬다.

"아니야ㅠㅜㅠ 나 진짜 멍청하지 않니? 너무 창피해ㅠㅜ"

아이유시는 계속 괜찮다면서 웃기다고 귀엽다고 해줬다. 진짜 착해ㅠㅠ

아이유시는 엄청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인맥도 진짜 넓은 친군데, 파티내내 맥주도 사주고, 자기 아는 사람들 소개시켜주고, 자기가 일하는 랩 구경도 시켜줬다. 덕분에 이미 졸업한 시니어들도 알게 되고, 실험실 잡 구하는 팁도 알게 되었다.

아이유시가 보여준 플라나리아

조금 민망하고 뻘쭘하긴 했지만, 가길 훨씬 잘했다는 생각이 든 파티였다!

 

혼자서 한 걸음 아주 칭찬해!

원래는 아무도 안 간다길래, 파티에 가지말까하고 고민했는데, 안 가면 후회할 거 같았다.

헬렌한테도 물어볼까 잠깐 고민을 하긴 했지만, 당당히! 혼자서 갔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가기로 한 파티를 친구가 안 간다는 이유로 취소하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걔한테 의지해서 단둘이 가기도 싫었다. 

나에게 많은 용기를 북돋아준 제로언니덕에 한발짝 내딛을 수 있었다!

의지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 이런데도 뻘쭘하지 않게 다닐 수 있을 것이고, 정보도 더 많이 빨리 공유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달변가가 아니어도 낯가림쟁이라도 친구 덕으로 아는 사람도 많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째든 우리는 각자 살아가는 개개인이고, 결국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내 커리어 쌓아가는 것은 '나'인데, 나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내 스스로가 그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의지가 되는 친구와 같이 왔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정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더 말 해 보려고, 부딪혀 보려고 노력을 덜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아이유시와 더 친해질 수 있었고, 많은 시니어들과 얘기할 수 있었고, 조언도 듣고, 실험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떤 한 가지가 절대적으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조금 더 능동적이어질 필요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다가가서 부딪히면 된다. 

연어새 아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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