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03
생일 축하해!
정말로 감사하게도 이번 생일에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정말 행복하게 보냈다. 엄마는 내가 타지에서 생일도 쓸쓸히 혼자 보낼까 싶어 걱정을 걱정을 그렇게 많이 했지만 실은 완전히 반대였다.
우선, 학교에서도 많은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얘네는 포옹하는 게 보편적이다보니 나를 꽉 안아주면서 웃으면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줘서 행복했다.
생일 파티는 헬렌이 주도해서 계획했고 나는 파티를 할 거란 것과 대충 몇명 정도가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준비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뭔가를 준비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예전에 퐁퐁이 대만음식을 생일 선물로 해준다고 해서 나, 퐁퐁, 헬렌이 저녁을 같이 먹고, 나머지 친구들은 조금 늦게 초대해서 같이 파티를 즐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하루동안 나름대로 깜짝으로 준비한 것을 몇번 들키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적어봐야겠다.
1. 실험실에서 클라라가 오늘 파티에 못 온다면서 생일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담은 메모지를 줬는데, 옆에서 악쉬타가 나에게 "내 메세지 헬렌한테 줬는데 받았어?"라고 물어봤다. ㅇ.ㅇ? 그랬구나.. 헬렌이 생일 메세지를 모으고 있구나..ㅋ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클라라가 나에게 준 종이도 헬렌이 지난 번에 대만에서 가지고 왔다며 나에게 보여줬던 종이다.
2. 실험 중에 산드라(스페인)은 내게와서 같이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연스럽게 "헐 나띠(에콰도르)랑 나랑 너랑 스페인 레스토랑 갈래?" 라고 제안했다. 내가 스페인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산드라가 알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뻐서 "너무 좋지!! 근데 오늘?"이라고 물었고 산드라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퐁퐁이 대만음식 만들어 준다는 것을 기억하고, "근데 나 헬렌이랑 퐁퐁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헬렌한테 물어봐야할 거 같아." 라고 하자 산드라 동공이 흔들렸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산드라가 당황했던 것 같다ㅋㅋㅋ 알고보니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산드라가 나를 맡아두고 있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인데, 내가 눈치 없이 약속있다고 한 것이다.ㅋㅋㅋㅋㅋ
헬렌에게 이 얘기를 하자 헬렌은 "근데 오늘 퐁퐁이 시간이 되는지 모르겠어. 퐁퐁에게 물어봐야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아 퐁퐁이 실험이 늦게 끝나려나보다 하고, 눈치를 전혀 못채고 있었다. 그때 헬렌이 "지금 물어봐야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퐁퐁 지금 여기 없는데 어디가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헬렌의 동선을 보고 있었다. 헬렌은 급하게 산드라에게 가더니 둘이 폭풍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ㅋㅋㅋㅋㅋㅋㅋ 그때 딱 눈치를 챘다. '이제부터 얘네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겠구나...ㅋㅋㅋㅋ'
3. 그렇게 실험 끝나고 산드라, 나띠와 6시에 만나기로 했다. 산드라에게 5시 반쯤 문자보내니 나띠가 6시에 우리 집에 날 데리러 갈거라고 했다. (나띠는 나와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산다.) 이것도 웃겨ㅋㅋㅋㅋㅋ 왜 날 모시러 오는 거야ㅋㅋㅋㅋ 그냥 건물 현관에서 만나면 되지ㅋㅋㅋ 그렇게 나띠를 만나서 기숙사 밖으로 나왔는데 저기서 조이슨(인도)이 기숙사로 걸어오는게 보였다. 근데 얘가 꽃을 들고 있었다. 쟤가 꽃을 살 애가 아닌데ㅋㅋㅋㅋ 좀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뭐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넘겼는데, 너무나도 당황한 티를 냈다ㅋㅋㅋㅋㅋㅋ 내가 손 흔들어서 인사하는데 얼굴이 놀래서 질려가지고는 한참동안 나에게 인사도 안 했다.
-저녁
그렇게 산드라, 나띠와 함께 스페인 레스토랑에 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 음식인데 심지어 스페인 친구가 직접 골라주는 스페인 와인, 음식이라니... 점원들이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게 영 못 미더웠지만 여전히 좋았다. 진짜 놀라웠던 것은 음식 메뉴는 2페이지고, 와인메뉴만 6페이지였는데 역시 와인의 나라에서 온 산드라 답게 그걸 읽고 골랐다. 나에게 와인 고르기란 그냥 찍기 혹은 폭풍검색하다가 그냥 찍기인데...ㅋㅋㅋㅋㅋ
이 와인 진짜 진짜 진짜 맛있다. 내가 살면서 먹어본 와인중에 정말로 가장 맛있었다. 고소한 맛이나면서 깔끔했다.
스페인 대표 요리인 타파스를 먹었다. 사실 타파스는 특정 요리가 아니라 저렇게 작게 작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주로 저녁에 마실 것과 곁들여 먹는다. 술 마실때 위를 좀 채워서 덜 취하게 하려고 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저녁시간동안 산드라 가족이야기, 내 스페인 생활이야기, 산드라가 들려주는 스페인 문화, 나띠의 에콰도르/남미 문화 이야기, 나의 한국이야기 등을 나누고, 산드라가 속상한 고민을 털어놔서 내 흑역사를 팔아가며 위로해 줬다.
산드라는 나에게 진지하게 어려보이는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다ㅋㅋㅋㅋㅋ 나띠가 옆에서 말하기를 "얘 아침마다 사과 먹는가니까 아마 그게 비법인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동양매직이다~
그리고 이때 나는 이미 알딸딸하게 취해있었다ㅋㅋㅋㅋ 티가 안나서 아무도 몰랐단다.
- 홈 파티
그렇게 집에 돌아오자 벌써 북적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계획은 나를 8시까지 집에 데려오는 거였는데, 우리는 9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어보니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예전 플메 코라(중국)도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와서 기뻤다ㅎㅎㅎ 나도 어제 직접 포장한 군것질거리를 나눠줬다.
터키 친구들, 에즈기, 하리카, 장수는 직접 컵케이크를 만들어왔다. 케이크 얼굴에 묻히는 것도 잊지 않은 친구들ㅎㅎㅎ
고맙게도 선물과 편지도 많이 받았다..
저게 바로 조이슨이 준 꽃다발에 있던 꽃ㅋㅋㅋㅋ
헬렌은 아주 특별한 선물을 만들어줬다. 직접 만든 사진첩이다. 반 년 간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때와 같지는 않지만, 그 시간을 보낸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많은 친구들이 생일축하한다는 메세지를 한글로 써 주었다. 정말 감동이었다. 번역기 돌려서 모르는 문자를 그리고 있는 모습들을 상상해보니 그 마음이 정말 예뻤다.
자랑하려고 쓴 것은 아닌데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좀 불편하기도 하다. 어쨋거나 행복한 생일이었다.
술 마신 김에 친구들이랑 폭풍대화 나누고, (술 마시면 업되는 편..) 와인도 마시고 게임도 했다.
에즈기가 가져온 게인인데, 저 돌림판을 돌려서 나오는 색의 젤리를 먹어야 하는 게임이다. 온갖 이상한 맛의 젤리들이 있었다. 방귀맛, 스컹크맛, 코딱지 맛.. 내가 먹은 맛은 꽤 맛있었다. 친구들이 줄줄이 괜찮은데? 이런 반응을 보이자 에즈기는 너무 실망하면서 "너네 진짜 싫어"라고 했다ㅋㅋㅋㅋㅋㅋ
나중에 나는 저 젤리를 뱉으러 화장실에 5번은 왔다갔다했다. 진짜 요상한 맛이 나는 것도 있었고, 꽤 괜찮았는데 산드라가 그거 코딱지 맛이라면서 코 파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얗게 불태우고 쓰러져 잤다. 다음날 9시 수업이지롱~
생일이어서 기뻤다기 보다 친구들과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서 기뻤다.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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